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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후반부, 센은 제니바의 용서를 구하러 먼 여정을 떠난다.
제니바는 유바바와 외모가 똑같은 쌍둥이 언니지만, 말투와 행동에서는 정반대의 온기와 지혜를 지닌 인물로 그려진다.
제니바의 집에서 머무는 짧은 시간 동안, 센은 자신의
정체성과 이 세계가 품은 의미에 대해
중요한 깨달음을 얻게 된다.
그 과정에서 제니바는 “한 번 만난 것은 잊히지 않아. 단지 기억해내지 못할 뿐이야.”라는 말을 건네며, 센이 ‘치히로’라는 본래의 이름을 잊지 않도록 돕는 조력자로 등장한다.
또한 치히로의 자아 회복을 상징하듯, 보라색 머리끈을 만들어 선물한다. 이 머리끈은 이후 이야기 전반에 걸쳐 중요한 상징으로 기능하게 된다.
이후 하쿠와 재회한 센은, 하쿠가 잃어버렸던 자신의 본명
”니기하야미 코하쿠누시“를 기억해낸다. 이는 센이 단지 자기 자신뿐 아니라 타인의 정체성 또한 회복시킬 수 있는 존재임을 보여주는 감동적인 장면이다.
센과 하쿠, 두 인물 모두가 ‘치히로’와 ‘코하쿠’라는 본래의 이름을 되찾는 이 순간은, 이 작품의 핵심인 자기 회복과 성장의 절정을 이룬다.
영화의 마지막, 치히로는 부모와 함께 다시 현실 세계로 돌아간다.
그 과정에서 “절대 뒤돌아보지 마”라는 하쿠의 당부처럼, 치히로는 끝내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
그러나 관객의 시선을 붙드는 것은 제니바가 선물한 보라색 머리끈이 여러 장면에서 반짝이는 모습이다.
이는 치히로가 겪은 모든 일이 꿈이 아니었음을 암시함과 동시에, 앞으로 기억을 잃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지키려는 그녀의 의지를 예고한다.
입구를 지나 다시 현실 세계에 발을 디딘 치히로의 눈빛은 처음과 달리 더 이상 두려움이나 불안을 품고 있지 않다.
머리끈은 마지막으로 반짝이며, 이 작품은 자아를 되찾고 한층 성숙해진 소녀의 모습으로 아름답게 마무리된다.
치히로와 센은 같은 인물이지만, 서로 다른 세계 속에서 상반된 의미를 갖는다.
‘센’은 치히로가 타인의 세계에서 경험한 자아 상실의 상징이며, 그 이름을 잊지 않기 위한 노력은 곧 자기 자신을 지키기 위한 내면의 투쟁이다.
이 여정을 통해 치히로는 센과의 분열을 통합하고, 진정한 ‘나’로 귀환하게 된다.
결국 치히로와 센은 하나로 융합되며, 성장의 서사는 완성된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치히로라는 캐릭터를 통해 현대인의 자화상을 그려낸다.
사회라는 낯선 세계에 첫발을 내딛는 수많은 치히로들은 ‘센’이라는 가명을 통해 성장의 과정을 겪는다.
그 여정 속에서 자기 자신을 잃지 않기 위해 주체성을 붙들고 살아가려는 노력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어린이를 위한 판타지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어른들을 향한 질문과 위로가 담겨 있다.
우리는 어떻게 자기 자신을 잃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까?
치히로의 여정은 그 물음에 대한 하나의 답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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