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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속 가오나시는 처음부터 비중 있는 캐릭터로 기획된 존재는 아니었다.
하지만 제작 과정 중 하야오 미야자키 감독은 문득 “얘는 지금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라는 질문을 던졌고, 그 물음이 캐릭터의 본질을 찾아가는 여정의 시작이 되었다.
그리하여 수정과 재구성을 거쳐, 우리는 지금의 영화 속 가장 인상적인 캐릭터이자 사랑받는 캐릭터 가오나시를 만날 수 있게 되었다.
‘가오나시(顔なし)’는 문자 그대로 “얼굴이 없는 자”라는 뜻이다.
그 이름처럼 그는 영화 속 인물들 중 유일하게 고유한 말소리나 얼굴표정이 없다.
그의 정체는 모호하고, 존재는 비현실적이며, 태도는 항상 어딘가 외로워 보인다.
하야오 감독은 이 인물을 가리켜 “자신감이 결여된 젊은 현대인”이라고 표현했으며, 이는 가오나시가 단지 하나의 캐릭터를 넘어서 우리 사회의 감정적 투영체로 기능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가오나시는 말이 없지만, 그 행동 하나하나가 감정으로 말하고 있다.
그가 보여주는 감정은 단순히 ‘악’으로 분류되지 않는다.
사랑받고 싶은 마음, 소속되고 싶은 갈망, 관계를 맺고 싶지만 방법을 모르는 불안, 그 모든 복잡한 내면은 오히려 우리가 살아가며 느끼는 감정의 거울처럼 느껴진다.
특히, 가오나시를 통해 가장 인상 깊게 드러나는 감정은 ‘욕망’이다.
그는 영화 속에서 총 세 명의 인물을 삼키며, 그들의 성격과 욕망까지 흡수한다.
이는 정체성이 불분명한 상태에서 외부의 영향을 여과 없이 받아들이는 사회 초년생의 모습과도 닮아 있다.
욕망에 잠식되어 거대해지고, 결국 폭주하게 되는 그의 모습은, 타인의 시선과 물질적 유혹 속에서 길을 잃고 흔들리는 현대인의 자화상이다.
그러나 가오나시는 끝내 변화한다.
제니바의 따뜻한 말과 센이 건넨 마법의 경단은
그를 다시 고요하고 다정한 존재로 되돌린다.
이는 단지 외적인 치유를 넘어, 내면의 정화와 회복을 의미한다.
욕망에 무너지고 방황했던 존재가, 다시금 자신으로 돌아오는 순간인 것이다.
그 과정을 되짚어보면, 가오나시는
관계에 서툴고 소외된 존재가 유대와 온기를 통해 다시 태어나는 서사를 품고 있다.
그는 처음부터 악의적인 존재가 아니었으며,
단지 관계를 맺는 법을 몰랐던 외로운 존재였다.
그 외로움이 욕망으로, 욕망이 폭주로 변해갔고,
결국엔 다시 자신을 마주하는 긴 여정을 걸어야만 했다.
하야오 감독은 가오나시를 통해 대중들에게 말하고 있다.
“너 자신을 잃지 말라.
욕망과 탐욕이 가득한 세상 속에서도,
소속되려 애쓰다가 흔들릴지라도,
결국 너는 너여야 한다.”
이 메시지는 사회로 첫발을 내딛는 젊은 이들에게 깊은 울림으로 다가온다.
얼굴 없는 존재처럼, 때때로 자아를 잃은 채 살아가야 하는 현실 속에서, 우리는 모두 가오나시가 되어본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다시 회복될 수 있다는 가능성도 지니고 있다.
가장 외로웠던 존재가, 가장 다정한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것, 그 진실을 통해,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관객들에게 조용한 위로와 다짐을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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