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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는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하지만, 그중에서도 영화 전체의 서사와 메시지를 가장 강하게 상징적으로 이끄는 존재는 유바바와 제니바라고 생각한다.
두 인물은 동일한 외형을 지녔음에도, 전혀 상반된 가치관과 세계관을 품고 있다.
이 대비는 단순한 선악의 구도가 아니라, 한 인간 또는 하나의 사회가 지닌 양면성과 이중성을 상징하는 장치로 기능한다.
유바바는 유옥(油屋)을 운영하는 절대 권력자로 등장한다.
탐욕스럽고 권위적인 태도를 지닌 그녀는, 직원들의 이름을 빼앗고 계약을 통해 그들을 통제한다.
이는 곧 정체성을 말살하는 시스템,
즉 인간을 수단화하고 효율로만 평가하는 비인간적 사회 구조를 은유한다.
그러나 유바바는 철저하게 “약속”은 지킨다.
그녀에게 계약은 단지 억압이 아닌, 합리적 통제와 거래의 질서이기도 하다.
그 모습은 마치 현대 사회가 추구하는 자본주의적 합리성과도 닮아 있다.
이익 앞에서 인간을 수치화하고 통제하는 세계,
그것이 유바바가 상징하는 질서이며, 동시에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의 또 다른 얼굴이다.
반면 제니바는 유바바와 동일한 외형을 지녔지만,
전혀 다른 세계에 머물며 조용하고 따뜻한 태도로 치히로를 맞이한다.
폭력이나 위계 대신, 이해와 용서, 정체성의 회복을 통해 치히로에게 삶의 중요한 단서를 건넨다.
“한 번 만난 건 잊지 못한다. 다만 기억해내지 못할 뿐.”
이 대사는 제니바의 본질을 잘 드러낸다.
그녀는 타인을 억압하는 대신, 그가 ‘누구인지’를 잊지 않도록 기억을 되살리는 조력자이다.
그녀의 존재는 치히로에게 자기 자신을 회복하는 결정적인 힘이 되며,
우리 모두가 언젠가 만나야 할 내면의 어른을 닮아 있다.
이처럼 유바바와 제니바는 겉모습은 같지만
정반대의 세계를 상징한다.
욕망과 규율로 구성된 세계 vs. 기억과 감정으로 이루어진 세계.
그 둘은 단순한 대비가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며 마주치는 세상의 두 얼굴, 그리고 한 사람의 내면에 공존하는 양가적 감정을 보여준다.
치히로는 이 둘 모두를 거쳐야만 진정한 자신에게 도달할 수 있었다.
어쩌면 하야오 미야자키 감독은 이 캐릭터들을 통해,
현실의 냉혹함 속에서도 따뜻한 인간성을 잃지 않기를,
그리고 성장이란 결국 두 세계를 모두 경험하고도 자신의 중심을 지켜내는 일임을 말하고자 했는지도 모른다.
유바바와 제니바의 대조는 단순히 극의 구성을 넘어서,
사회로 첫 발을 내딛는 이들에게 보내는 깊은 은유로도 읽힌다.
아직 가치관조차 정립되지 않은 젊은 세대는
이 둘 사이에서 방황할 수밖에 없지만,
그 과정을 통해 자신만의 균형을 찾고,
끝내 스스로를 잃지 않는 어른으로 나아가야 한다.
하야오 감독은 말하고 있는 듯하다.
“세상의 얼굴은 하나가 아니며,
진짜 어른이란 그 다층적인 세계를 이해하면서도
자신의 중심을 잃지 않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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