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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이란 건 물 같아서
틈만 나면 새어 나오고
틈을 못 찾으면 안으로 가라앉는다.
겉으론 평온했지만,
속에선 이미 파도가 치고 있었다.
나는
내 안에서 일어나는 소란을 외면하고 있었다.
불안은 언제나 그렇게 시작된다.
그건 꼭 한 방울의 물 같다.
처음엔 바닥에 톡 떨어질 뿐인데
그게 곧 웅덩이가 되고
어느새 내 목까지 차오른다.
그리고 정신을 차릴 즈음엔
나는 이미, 숨 쉴 수 없는 깊이에 도착해 있다.
그 불안은 늘 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
사람들의 눈빛,
나 자신에 대한 끝없는 의심,
내가 만들어낸 수많은 가능성 중 가장 나쁜 쪽.
일어나지 않은 일을 상상하고,
그 상상을 진짜처럼 믿고,
믿음 뒤엔 그에 맞춰 내 감정을 낭비한다.
그렇게 나는,
내가 만든 이야기 속에서 살고 있었다.
소녀는 물속으로 천천히 가라앉는다.
손을 뻗어보지만,
빛은 닿으려 발버둥 칠 수록 더 멀어지고,
주변은 블랙홀처럼 어둠으로 천천히 소녀를 빨아들인다.
소녀는 더는 움직이지 않기로 한다.
버티는 것도,
애써 올라가려는 것도
지금은 너무 지치니까.
대신 잠시 떠 있기로 한다.
이 어둠 속에서.
바다의 밑바닥은 생각보다 조용하고
생각보다 다정하다.
누구의 소리도 닿지 않고,
아무 말도 요구받지 않는 그 공간.
어쩌면 소녀만을 위한 공간처럼 느껴지기도 하다.
그 아래에서 비로소 숨을 돌리고,
모든 소음을 끄고,
온전히 소녀 자신을 바라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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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필
일상의 순간과 내면의 이야기를 그림으로 담아내는 작가입니다. 평범한 하루 속에서 느끼는 감정과 생각들을 선과 색으로 풀어내며, 작품을 통해 작은 위로와 공감을 전하고자 합니다. 제 작업은 단순한 기록을 넘어, 삶의 소중함과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여정을 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