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순지 위에 흑연, 분채, 먹을 사용해 그림을 그린다. 각기 다른 모양들이 모여 느슨한 덩어리를 이루고, 그것은 규정되지 않은 자연 그 자체의 이미지를 연상 시킨다. 나는 자연을 닮은 회화를 추구한다.
삶은 때로 예기치 못한 자극을 마주하게 한다. 나의 작업은 그것을 억지로 통제하지 않고, 의연하게 수용해내는 과정이다. 구상은 가능한 간단하게 한 후 즉흥적인 에너지에 따라 작업을 이어간다.. 하나의 원을 그려나갈 때마다 나는 숨을 고르고 마음을 다잡는다. 일정하지 않은 패턴과 유기적인 리듬을 만들어낸다. 응집한 덩어리들은 화면 위에서 점차 생동하듯 호흡을 지닌다.
나는 나의 작품들을 정적인 수다 같다고 표현하고 싶다. 멀리에서 보면 화면은 고요하지만, 가까이 들여다 보면 꽤 수다스럽다. 일정하지 않은 선과 형태 사이의 미세한 흔들림 속에 켜켜이 쌓인 작은 감정들이 숨어있다. 감상자의 시선이 오래 머무를수록, 그 안에서 다양한 리듬과 사색이 자연스레 발견되길 바란다.
이주은 작가노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