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작가는 종교에 가까운 자기 확신이 있어야 한다. 색, 구도, 오브제, 철학 하다못해 마감재의 광택까지도 모두 작가 본인이 판단하고 결정한다. 누구도 대신 답을 내려주지 못하고 심지어 기본적인 매뉴얼도 없다. 이런 직업적 특성은 조금씩 머리와 몸에 쌓여서 성격과 가치관에도 영향을 끼친다. 내 판단이 옳고 내 선택이 최선이며 나와 다른 의견은 받아들인 척하면서 튕겨낸다. 그렇게 만들어진 선택의 배낭은 점점 무거워지는데 내 양초의 길이는 점점 짧아지는 것 같다. 내 앞에 저 실루엣이 돈다발인지 지고 날라야 할 벽돌인지 알고 싶지 않은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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