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title-N001》은 제가 의도적으로 제목을 비워둔 첫 작업입니다. 꽃의 형상을 빌려 감정의 구조를 구성해오던 기존 시리즈들과 달리, 이 작품은 어느 감정에도 이름을 붙이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untitle’이라는 단어는 단순한 공백이 아니라, 저에게도 어떤 구간의 ‘멈춤’ 혹은 ‘보류’ 같은 상태로 느껴졌습니다. 화면 속 파란 꽃과 붉은 꽃은 서로 겹쳐 있지만, 누가 위에 있는지는 명확하지 않습니다. 이중 구조로 된 꽃의 형상은 감정이 억눌리거나 중첩될 때의 복잡한 층위를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중심의 검은 타원들은 늘 그렇듯 제 감정의 응축된 단위들이고요. 이 작품에서는 평소보다 붓자국을 많이 남겼습니다. 색을 깔끔히 정리하는 대신, 일부러 불균질한 면을 그대로 두었고, 그 안에서 감정이 정리되지 않을 때의 표면을 시각화하고자 했습니다. 말하지 않은 감정, 제목 없는 감각이 이 안에 머물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