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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토(淨土)〉(2023)는 불교에서 말하는 정토의 개념을 현대적 조형 언어로 재해석한 작품이다. 불교에서 정토는 단순한 천상의 공간이 아니라, 수행자의 마음이 맑아질 때 비로소 드러나는 내적 세계이자, 깨달음의 과정 속에서 형성되는 정신적 공간이다. 이 작품은 그러한 정토의 개념을 파편화된 색면과 분절된 형상을 통해 탐구하며, 존재와 비존재, 실체와 비실체의 경계를 흐릿하게 만든다.
작품의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은 푸른 계열의 색감과 금빛의 대비이다. 푸른색과 보랏빛의 색조는 깊은 사유와 명상을 상징하며, 고요한 내적 세계를 암시한다. 이와 함께 사용된 금빛은 전통 불화에서 신성을 나타내는 요소로, 깨달음의 빛을 시각적으로 강조한다. 그러나 금빛이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흐트러지고 분절된 색면들 위에 퍼져 있다는 점에서, 깨달음이 특정한 순간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점진적으로 확장되는 과정임을 보여준다. 이는 불교에서 말하는 무명(無明)과 깨달음(覺)의 공존, 즉 어둠이 있기에 빛이 더욱 빛난다는 개념을 형상화한 것이다.
조형적으로 볼 때, 이 작품은 큐비즘적 기법을 활용하여 불상의 형상을 기하학적으로 해체하고 재구성하고 있다. 화면을 구성하는 색면들은 개별적인 요소처럼 보이지만, 시선을 멀리 두고 바라보면 전체적인 불상의 형상이 떠오른다. 이는 메를로퐁티의 지각 철학과 연결되며, 우리가 세계를 있는 그대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형성된 경험을 통해 사물을 이해한다는 점을 시각적으로 구현한다. 가까이서 보면 추상적인 색면들의 조합이지만, 멀리서 보면 불상이 완성되는 이 과정은, 정토라는 개념이 절대적인 실체가 아니라 각자의 인식 속에서 형성되는 내적 세계임을 암시한다.
또한, 작품 속 불상의 형태는 완벽한 형상으로 고정되어 있지 않으며, 끊임없이 변하고 흐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이는 불교의 핵심 개념인 무상(無常, anitya)—모든 것은 변하고 영원한 실체는 존재하지 않는다—를 시각적으로 표현한 것이라 볼 수 있다. 불상은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조각난 색면들이 서로의 관계 속에서 불완전하게 형성된 존재이며, 이는 존재란 단일한 실체가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과정 속에 있음을 시사한다.
구도 또한 대칭적인 안정감을 유지하면서도, 분절된 색면과 형태의 조합을 통해 유동적인 느낌을 준다. 중앙의 불상과 주변의 보살상들이 화면의 중심을 잡아주면서도, 색채의 변화와 형태의 해체를 통해 마치 빛의 파동처럼 흐르는 시각적 리듬을 만들어낸다. 이러한 유동성은 정토라는 공간이 단순한 물리적 장소가 아니라, 마음속에서 생성되고 변화하는 개념적인 공간임을 강조한다.
〈정토 淨土〉는 전통 불교 미술의 요소들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며, 정토라는 개념이 특정한 장소가 아니라 지각과 해석 속에서 끊임없이 변화하는 내면의 세계임을 보여준다. 빛과 어둠, 형태와 무형, 개별성과 전체성이 공존하는 화면 속에서 우리는 정토의 모습을 찾기도 하고, 스스로 정토를 만들어가기도 한다. 이 작품은 깨달음이란 무엇이며, 정토는 어디에 존재하는가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던지는 장치이며, 관객이 작품과 마주하는 순간, 각자의 인식과 경험 속에서 정토가 피어나도록 유도하는 시각적 명상의 장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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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필
나의 작업은 비형상 조각을 통해 무의식을 탐구하며, 빛과 어둠의 조화로 인간 내면의 양면성을 드러낸다. 불교적 개념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여 관람객이 자신의 무의식과 마주하고 삶의 본질을 성찰하도록 유도한다.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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